엄마와의 애착관계가 평생의 인간관계를 결정한다.
애착관계는 생후 3세 이하의 아이들에게 생기는 관계이다. 아이는 자기 생존을 위해서 어머니나 보호자를 제 곁에 붙들어두는 행동을 한다. 매달린다든지, 울거나 웃는 행동들이다. 이런 행동을 보면 엄마는 꼼짝 못하고 아이 곁에 붙어 있게 된다. 아이의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 그래서 프로이트 박사는 ‘아이는 집안의 황제다’라고 했다. 엄마는 사랑의 시녀가 된다. 이런 애착관계가 아이의 성격발달에 아주 중요하다. 애착관계가 잘된 아이들을 ‘애착 안정아’라고 한다. 대인관계가 원만한 성격은 ‘애착 안정아’였던 사람들이다.
반대로 ‘애착 불안정아’나 ‘애착 혼란아‘ 는 대인관계를 두려워하고 파괴적인 성격이 된다. 위안이 필요해서 다가갔는데 오히려 엄마가 짜증을 내고 혼을 내면 아이는 혼란스럽다. 아이가 엉덩이에 난 부스럼이 아파 엄마에게 달려갔는데 어머니는 아픈 아이를 위로하고 치료해 주기는 켜녕 어히려 엉덩이를 보였다고 나무랐다. 아이는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수치심 많은 아이가 되었다. 이런 부모를 가진 아이는 애착 혼란아가 된다. 다른 사람들을 대할때도 상대의 반응이 두려워진다.
사람들과 잘 지내려면 엄마와 애착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대 유아들은 애착장애의 위기에 놓여 있다. 어머니들이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아이에게 집중할 수가 없다. 되도록 만 3세가 되기까지는 엄마가 아이 곁에 있어 주어야 한다.
아이를 다른 곳에 맡기는 것도 문제이다. 아이가 귀찮아서 마구 재우거나 엄마가 없을 때는 무섭게 대하다가 엄마앞에서는 천사처럼 돌변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아이는 혼란에 빠진다. 또한 애착관계가 엄마가 아니라 아이 봐주는 사람이나 할머니, 선생님인 것도 문제이다. 이들과 헤어질 때 아이에게 우울증이 올 수도 있다. 그래서 아이 봐 주는 사람은 자주 바꾸는 것이 좋지 않다. 정 든 사람에게 버림받는 상처를 아이의 입장에서는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기 인생의 청사진을 가지고 태어난다.
에릭 에릭슨은 아이들은 태어날 때 성장의 청사진(blue print)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다. 집을 지을 때 청사진대로 착착 지어가듯이 아이들은 자기들의 청사진대로 자기 속도에 맞추어서 자란다.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가 시절을 쫓아 열매를 맺음 같다. 부모의 뜻대로 아이를 끌고 가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니다. 방해 인자나 해로운 것들을 제거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비옥한 토양과 물이 풍부하고 햇빛이 비치면 아이는 자기 시간에 자기에게 필요한 것들을 흡수하여 건강하게 자란다.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며 잘 섬기는 리더도 될 수 있다. 아이는 인위적으로 키워서는 안된다. 아이의 필요에 민감하고 아이의 시간표를 따라가는 엄마가 좋은 엄마다. 이런 엄마를 가진 아이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친해지며 친밀함의 행복을 나누어 주는 어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