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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을 받아야 편해지는 죄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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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을 받아야 편해지는 죄책감



 

인간을 지독하게 괴롭히는 감정 중 하나가 죄책감이다. 이는 친밀함을 느낄 수 없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죄책감이 심한 사람들은 자신의 숨겨놓은 죄가 탄로날까 봐 사람의 접근을 피하여 대인관계가 잘 되지 않거나, 스스로를 괴롭히게 된다. 즉 자신을 성장시키는 에너지를 자신을 괴롭히고 학대하는 에너지로사용하며 스스로를 벌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결과에 대해 비난이 두려워서 대인관계를 피할 수밖에 없다. 

프로이트 박사는 인간의 성격이라는 건물을 유지하는 세 개의 기둥에 대해서 말했다. 이드와 자아, 초자아가 바로 그것이다. 이 중에서 죄책감을 일으키는 부분은 초자아이다. 인간의 갈등과 고통의 뿌리가 여기서 시작된다. 

초자아는 4,5세 경부터 발달하기 시작한다. 초자아는 자신을 평가하고 비판하며 도덕적 행동을 하게 된다. 우리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넌 형편없는 아이구나”라는 소리나 “너는 해서 안 될 짓을 했어” “부끄러운 줄 알아라.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너무 창피해서 죽고 싶다” 는 생각에 빠지고 실제로 수치심에 괴로워 자살한 사람도 있다. 수치심은 초자아가 일으킨다. 

양심도 초자아의 기능이다. 초자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인격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예수님을 본받아 그분처럼 살겠다”하는 ‘자아이상(ego ideal)'도 초자아의 기능에 속한다. 인간이 죄를 범한 뒤에 잘못을 깨닫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이 초자아의 기능 때문이다. 우리가 착한 일을 했을 때 마음에서 “잘했어!”라고 뿌듯한 보람을 느끼는 것 또한 이 초자아의 칭찬이다. 사회생활을 원만히 하기위해서는 이 초자아가 꼭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초자아가 너무 가혹하거나 너무 미약한 것이다. 



초자아가 미약한 사람은 수치심도 못 느끼고 양심의 가책도 없다. 반 사회적 인격장애자나 소위 깡패들은 초자아가 마비된 사람들이다. 



반면에 너무 가혹하거나 처벌적인 사람들은 죄의식과 수치심, 열등감에 사로잡혀 산다. 우울증에 잘 빠지고 자기비하와 자책을 한다.  

“나는 못난 놈입니다. 나는 할 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는 무능력자입니다. 나는 쓰레기입니다. 아무도 나 같은 놈을 좋아할 리 없습니다. 내가 나를 잘 압니다.” 이처럼 늘 사람들의 비난을 의식하며 산다. 심지어 버스 속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 까지 두려워한다. 자기의 죄를 다 알 것 같아서이다. 

이렇게 가혹한 초자아는 노이로제도 만들고 친밀한 관계도 가로막을 뿐 아니라 인생 자체를 불행하게 만든다. 가혹한 초자아는 강박증도 일으킨다. 



 

가혹한 초자아는 어떻게 생기는 걸까?



한마디로 초자아는 거세 불안을 느끼는 아이가 부모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부모의 훈계와 교육태도를 배우고 따름으로써 형성된다. 부모가 마음 속에 내재화되어 형성되는 것이다. 부모의 양육방식이 비합리적이고, 지나치게 엄하거나 처벌적일 때 그런 부모가 내재화되면 어린이의 초자아는 가혹하고 처벌적인 것이 되고 만다. 이런 초자아를 갖게 되면 매사에 가혹한 초자아의 비난을 받게 되어 죄책감과 자책, 우울, 열등감에 빠져 살게 된다. 

이런 사람은 자기 마음 속에 가혹한 처벌적인 부모를 일생 모시고 사는 셈이다. 부모를 피해 미국에 이민을 가도 마음 속의 부모는 미국까지 따라온다. 그래서 항상 자신을 비난하는 소리를 들으며 주눅이 들고, 병적 완벽주의에 빠지고, 메마르고 딱딱한 삶을 살게 된다. 

사실 초자아는 자아를 돕는 기능을 하는 것이 제 역할이다. 자아를 도와서 이드(본능적 욕구)의 욕망을 평가하고 조절하는 기능을 해 줘야 하는데 초자아가 자아를 적대시 할 때 병적 반응이 일어나서 우울한 성격이 된다. 본능적 욕구는 말 그대로 본능적으로 일어난다. 그것을 초자아가 합리적으로 평가하여 현실에 맞게 대처하면 된다. 그러나 초자아가 너무 가혹하면 본능적으로 일어난 생각 자체로 자신을 나쁘다고 평가해 버린다. 초자아가 본능적 욕구를 적대시 한 결과이다. 

머리 위를 날아가는 새 때문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 새가 내 머리에 둥지를 틀지 못하게 하면 된다.

 

-나를 행복학 하는 친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