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엄마 하기 나름이다 / 박혜란
여성학자/(사)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공동대표
'아이는 부모 하기 나름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말이 변질되어 쓰이는 것 같다. 내 생각으론 원래 이 말은 '아이는 부모를 보고자란다.'는 아주 포괄적인 의미였을
터인데 지금은 '부모가 물질적으로 뒷받침하는 만큼 성공한다'는 아주 좁은 의미로 통용되면서 부모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의 내용이 단 한 가지 '공부 잘하는 아이 만들기'로 집중되고 그 최종 목표가 '좋은 대학
보내기'로 고정되면서 요즘 부모들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인생의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아이의 공부 뒷받침을 충실히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게 좋은 부모노릇이라는 주술에 눌려 자신의 삶은 돌아보지도 못하고 아이와 함께 대학입시를 향하여
달리고 또 달린다.
말은 부모노릇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아이 키우기를 전담하는 쪽은 엄마들이다. 요즘 젊은 엄마들이 아이 키우는
모습을 들여다보면 육아는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라 전쟁일 뿐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엄마는 야전사령관이고 아이는 병사이며 아빠는
보급부대원이다.
엄마들은 하소연한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교육풍토와 열악한 교육환경, 그리고 엄마노릇에 대한 편향적 인식이 우리들로
하여금 이토록 힘들게 살도록 부추긴다고. 사실이다. 학벌타파라는 구호가 꽤 오래 전에 울렸건만 어찌된 셈인지 학벌주의는 갈수록 심화되기만 하고,
공교육은 갈수록 피폐해지더니 이젠 아예 껍데기만 남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 사회는 한 여성의 삶을 평가할 때 아이를 얼마나
좋은 대학에 보냈느냐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관례로 굳어져 버렸다. "저 엄마는 아이를 정말 잘 키웠어."라는 칭찬은 아이를 얼마나 바르고 착하게
키웠느냐는 사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말이다. 그러니 전업주부들은 '집에서 아무 것도 안하면서' 아이 공부 하나 제대로 못 챙긴다는 비난이
두려워서, 그리고 취업주부들은 '그 잘난 돈 몇 푼 번다고', 또는 '저만 잘 되려는 욕심 때문에'라는 핀잔이 듣기 싫어서, 그저 세상에서
말하는 '좋은 엄마' 노릇에 무작정 매달리는 게 오늘의 우리 현실이다.
글쎄 이렇게 해서 서너 살 때부터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몰고
허리가 휘어지도록 사교육비를 마련해서 뒷받침한다고 해서 앞날이 보장된다는 확신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늘 우리 엄마들을 괴롭히는 건
전력투구를 해서 아이를 뒷바라지해도 아이가 '내 뜻대로' 따라오지 않을 때가 더 많다는 사실, 게다가 요즘의 나라 안팎 상황으로 미뤄 볼 때
앞으로 내 아이가 이른바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 해도 그것이 곧 아이의 성공과 직결되진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불안감들이 젊은 여성들로 하여금 결혼을 꺼리게 만들고 혹시 결혼을 한다 해도 출산을 기피하게 만들어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저 출산율 국가로 기록되는 데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아무튼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셋씩이나 낳아서 키운 '겁없는'
선배로서 나는 젊은 엄마들의 요즘 엄마노릇에 대해서 항상 안타까운 마음이다. 내 경험으로는 아이를 키우는 일은 엄마가 생각만 조금 바꾸면 정말
신나고 행복한 일인데 왜 그렇게들 기를 쓰고 힘들고 부담스러운 쪽을 선택할까 이해가 안 간다.
물론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여건들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건 아니지만 엄마들이 너무 쉽게 자기만의 생각, 즉 소신을 포기하고 세상이 말하는 '좋은 엄마'노릇을 따라 잡느라고 헛된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 같다는 말이다.
그래서 난 아이와 엄마가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습관적으로 해온 엄마노릇을 다시
생각해보고 스스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새로운 엄마노릇의 모델을 만들어 가자고 권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이제까지 자신이 갖고 있던
자녀관, 교육관, 여성관을 솔직하게 돌아 봐야 한다.
먼저 내게 아이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자녀교육의
제1조가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라'는 내용임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부모는
매우 드물다. 심지어는 자녀가 어떻게 독립된 존재냐, 내 몸으로 낳았으니 바로 나이지, 그러니까 만약 내가 죽고 싶다면 아이들을 데리고 죽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을 가진 부도들도 의외로 많다.
예전시대처럼 자녀를 가문의 후계자로 생각하는 경우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부부의
공동소유물 내지는 나의 분신이라는 인식은 아주 강한 것 같다. 때문에 자녀의 성공은 곧 나의 성공이고 실패는 나의 실패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녀의 성적이 곧 엄마의 성적이다. 반에서 1등하는 아이의 엄마는 1등 엄마이고 꼴찌 하는 아이의 엄마는 꼴찌엄마이다.
엄마들은 "공부해서 남주냐?"고 마치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듯 꾸짖지만 아이들은 '공부해서 엄마 준다.'고들 생각한다. 그래서 성적이 뜻대로
안 나왔다고 자살하는 아이들의 유서에는 공부 못해서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아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볼 수
있다면 아이의 성적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서 어쩔 줄 모르는 엄마들의 숫자는 확 줄어들지 않을까. 그리고 아이를 내 뜻대로 하겠다는 욕심 대신
아이의 뜻이 무언지 살펴보고자 하는 마음의 여유가 생길 것이다. 왜냐 하면 아이와 나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어떤 엄마들은 아이와 자신 사이에 거리가 생기는 걸 둘의 사이가 나빠지는 증거라고 생각하며 두려워하는데 이는 큰 오해다.
오히려 거리를 둠으로써 아이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 그리고 엄마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무조건 공부만
강요하는 대신 아이의 적성을 살려 주어야겠다는 의지가 강해진다.
이러한 의지는 자연스럽게 교육관까지 바뀌게 만든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이 무조건 공부하라고 닦달해서 좋은 대학을 보내는 게 아니라 아이가 가진 꿈을 살려주는 거라는 믿음이 저절로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옆집 아이가 어떤 사교육을 받던 초연해질 수 있는 내공이 생긴다. 인간은 누구나 다 다르다는 걸 인정하게 되니까 내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해서
공연한 불안감을 느낄 필요가 없어진다.
아이의 꿈이 무언지 알기 위해선 아이와 대화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게 되고 모자관계는
밀착이 아니라 공존하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관계를 통해서 엄마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 부담이 아니라 기쁨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느낀다.
아이를 일류학교에 들여 보내야 행복할 것 같다고 막연하게 생각해 왔는데 그게 아니라 지금 아이와 함께 있는 매순간이 행복한 순간임을 깨닫는다면
자녀교육만이 아니라 그 엄마의 인생은 이미 성공이라고 단언해도 좋다.
마지막으로 엄마들은 자신이 엄마이면서 동시에 한 여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이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며 적성을 찾아 주고 싶은데 아이를 들여다보면 자꾸 초조해져서 '공부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고 일일이 간섭하고 싶다고 말하는 엄마들을 많이 만난다. 답은 간단명료하다. "아이를 들여다보지 말고 그 시간에 나를
들여다보라.".
아이를 다 키워 놓은 다음에야 나를 들여다보겠노라는 엄마들이 있지만 그건 어리석은 짓이다. 우선 아이를 다 키워
놓은 시점이라는 건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다. 어떤 엄마는 대학에 들여보내면 다 키웠다고 말하지만 어떤 엄마는 결혼시켜서 아이 낳고 잘 사는 것
봐야 마음놓는다고 말한다. 결국 내 마음이 문제이다.
또 아이를 키우면서 동시에 나 자신을 키워 가지 않으면 노년이 너무
빈곤해진다. 더욱이 요즘 여성들은 여든 살 넘어 살 확률이 아주 높다. 그러므로 젊어서부터 자신의 삶을 긴 안목으로 설계해야 한다. 그러니
아이들을 들여다보면서 잔소리할 시간에 나를 키워야 한다.
그렇게 되면 엄마만 좋은 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좋다. 간섭을 덜 받게
되니 자율성과 창의성이 높아질뿐더러 이미 다 산 것 같은(?) 나이의 엄마가 새롭게 자세를 다지는 모습에서 신선한 자극을 받는다. 꿩 먹고 알
먹는 자녀교육법이다.
결국 아이는 엄마하기 나름이다. 그런데 그 엄마가 어떻게 하느냐는 전적으로 엄마의 몫이다. 세상이 말하는
엄마노릇을 맹목적으로 따라 하면서 늘 불안해 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옳다고 믿는 엄마 노릇을 만들어 가면서 늘 행복해 할
것인가.
우리 아이는 그렇게 키우면 큰 일 난다고? 아이는 엄마가 믿는 만큼 자라는 법이다. 아이를 믿고 안 믿고는 아이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전적으로 엄마 마음에 달려 있다.
자, 아이 키우는 기쁨을 마음껏 누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