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매일 신문 칼럼 2007년 3월 30일 정 지은
가면과 자기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페르소나’(persona)라고 말한다. 우리말로는 가면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탈춤에서도 여러 개의 탈을 번갈아 썼다가 벗었다가 하면서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말 가운데 탈이나 가면에 해당되는 말로는 ‘체면’, ‘낯’, ‘얼굴’과 같은 것이 있다. 이는 가면을 쓴 사람의 개성이 실상이 아니라 가상이라는 뜻도 내포된다.
현대사회에서는 가면이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이다. 그 이유로는 한 사람이 매우 많은 역할을 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친구로서, 전문인으로서, 집단원으로서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특히 여성들은 더욱 많은 가면이 요구된다. 이러한 가면마다 요구하는 특성들이 또 다르다. 모임을 갖는 자리에서는 밝은 모습을, 업무에서는 성실하고 능력있는 모습을, 집단속에서는 집단의 응집력을 깨지 않는 모습 등 여러 가면마다의 ‘이미지’가 있게 된다. 때로는 이러한 이미지가 실제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고, 가면이 진짜 얼굴보다 더욱 중요하게 대접받는 경우도 많다.
젊은이들에게는 이 가면을 잘 쓸 수 있게 가면 쓰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궁극의 과제이지만, 중년이후 노년에서는 오히려 그것을 벗겨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자신 내면의 실체로 다가갈 필요가 있다. 이는 화가들의 그림에서도 나타난다. 렘브란트, 티티안, 할스, 고야 등 많은 화가들의 초기작품은 외관을 포착하려고 하지만 말년의 작품들은 대상의 심리적인 내용에 중점을 두면서 겉모습보다는 내면적인 특성을 묘사하려고 한다.
이러한 인간의 심리적인 발달과정은 가면과 자기와의 균형을 잡지 못할 때 증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즉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그 존재자체를 잃어버리게 된다. 갱년기 우울증은 생물학적 요인도 있겠으나, 그 심리적 요인은 대개 중년이후에 외부로만 향해 있던 자아의 시선을 안으로 되돌리려는 무의식적 노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흔히 말하는 ‘빈둥지증후군’이라는 공허함을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자신을 찾아가는 일련의 심리적 성장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을 넓디넓은 들녘이라고 한다면 미개발지역은 무의식이다. 개발된 초원은 빙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미개발지역을 가꾸지 않으면 잡초더미로 전락하게 되고 결국은 사용할 수 없는 황무지가 된다.
이러한 자기소외는 먼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살피는 자기몰입과정이 필요하다.
미술치료에서는 이러한 자신의 미개발지역의 소리에 관심을 갖고 그것들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 몰입하게 되고, 자신내부의 메시지를 그림 이미지로 나타내는 창조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미지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생각들을 표출한다. 즉 미술치료는 미술작업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하며, 몰입 속에는 창조성이 존재하므로 치료적인 효과를 나타내게 된다.
우리 몸은 균형을 필요로 한다. 신체도 마음도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균형맞추기’이다. 그것은 가면에 과도하게 자신을 맞추어 살지도 않고, 가면을 부인하지도 않으면서 자기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유연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