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관계
정지은 (울산미술치료센터&정신분석연구소)
“당신은 one of them입니까, 유일한 자기입니까?” 인문학 특강에서 최진석 교수가 청중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우리나라 문화는 ‘팀’이 우선이다. 가족 안에서 가족의 규칙을 잘 지킬 수 있을 때 그 개인은 ‘존재’를 인정받는다. 규칙의 변화를 요구하거나 잘 지키지 못할 때는 개인의 욕구는 처참히 무시되거나 비난받는 것이 당연시 된 문화다. 최진석 교수는 ‘부모가 자식을 잘되게 하기 위해서 선의를 가지고 하나의 기준을 가지게 되는 순간(대학 등) 그 선의는 폭력이 된다. 기준이 만들어지는 순간 그것이 아무리 선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바로 권력이 된다. 권력은 결국 폭력이 된다.’고 하였다. 더불어 이미 정해진 규칙을 조정하고 변경하는 것 또한 어렵다. 마치 공무원들이 업무규칙을 조정하고 변경하는 것만큼 어렵다.
상담을 하면서 아동·청소년들이 자기를 형성하는데 있어 환경의 유연한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상담사례를 통해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한 사례는 중학교 남자 아이이며, 품행문제가 매우 심각하였고, 우울이 깊었다. 집에서 씻지도 않고, 때 맞춰 먹지도 않고,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학교에도 가지 않고 있어 부모의 마음이 애가 타다 못해 어머니가 우울증으로 드러눕기 일보직전에 나에게 데려왔다. 병원에도 가보고 상담도 여러 군데 받았으나 낫지 않는다고 하였다. 병원에서 처방한 약도 먹이려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여야 하여 힘들기 이만저만하지 않았고, 그나마도 먹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하였다. 그래도 다행히 나를 만나러 오는 일은 부모의 대동 하에 정해진 시간에 왔다. 미술치료 작업에서도 나쁘지 않게 임하였고, 시간이 갈수록 미술작품으로 표현된 자기의 마음이 많은 부분 투영되어 나타났다. 작품으로 투영되어 나타난 것으로 아이의 마음이 다소 가벼워지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조금씩 입을 떼기 시작하였다. 그 아이와 내가 이런 관계가 되기까지는 1년여가 결렸다. 그러면서 부모에 대한 불만들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이 있을 것이라고 여러 번 부모에게 미리 예비적 안내를 하였고, 그 때 부모의 도움과 협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여러 번 강조하였으나, 결국 부모가 이런 아이의 모습을 받아주지 못하여 부모가 상담을 중단했다. 부모는 과거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던 아이의 모습만 그리고 있었고, 부모 자신의 마음을 열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하였다. 아이의 문제일 뿐이니 아이만 달라지면 된다는 자세였다. 상담이 아이를 부모의 기대대로 변화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자 아이는 상담에 오고자 하였으나 부모가 상담을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었다.
아이란 존재는 ‘자기’가 되고자 변화를 원하는데 부모는 변화를 거부하였다. 부모의 이런 일방적인 태도는 집안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났으리라 추정된다. 그러한 과정이 아이에게 반복된 무력감으로 형성되었고, 이것이 쌓이면서 분노를 형성하였고, 이 분노를 표현할 길이 없던 아이는 제 나이에 맞는 당연한 행동으로 변화하지 않음으로써 부모에게 좌절감과 화를 되돌려 주었다. 결국 변화를 거부함으로써 부모도 원하는 팀을 이루지 못했고, 아이도 변화를 통해 성장하지 못했고, 팀의 일원도 되지 못했다. 무의식적이지만 부모가 원하는 대로 모두가 변화하지 않게 되었다.
반면에 또 한 사례는 자해와 입원으로 반복된 여고생의 이야기이다. 앞의 중학교 남자아이와 다르지 않게 집안에서는 매일매일이 전쟁통이었다. 자해시도로 입 퇴원을 반복하였고, 약을 먹는 것에서부터 갈등과 분노의 폭발, 학교 문제,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이 매번 갈등의 시작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시키는 것이 부모의 유일한 소원이자 상담의 목표였다. 다행히 이 여고생도 미술치료를 좋아하였고,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나를 믿지 못할 때는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였고, 그 때 따돌림의 상처들을 이야기 하였다. 그러다 나와 신뢰가 쌓이면서 아동학대에 해당되는 상처와 부모에 대한 불만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과정에서 그 부모들은 참고 견뎌주었고 함께 울며 사과도 하였다. 상담도 매번 빠지지 않았고 부모님들이 상담에 성실하게 꾸준히 데리고 오고 갔다. 결국은 그 여고생은 3년여의 긴 시간을 거쳐 부모와 관계 회복을 하였고, 학교 졸업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대학을 가서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게 되었고 자신만의 꿈도 생겼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부모가 아프지만 자신들의 실수를 아이의 관점에서 바라봐 주었고, 아이의 변화에 부응하였고, 아이에게 실습의 대상이 되어준 것이다. 만약 부모가 이렇게 협력하지 않았더라면 이 아이는 자기 파괴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애벌레가 껍질을 벗고 날개를 펼치고 날 수 있게 변화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날개를 펼치려고 해도 날개를 펼칠 공간을 주지 않으면 날개근육에 힘이 생기지 않는다. 설사 혼자서 고전분투해서 날 수 있게 되더라도 부모와의 건강한 관계 개선까지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 어느 하나의 대응으로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병은 참으로 다양하고 복합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병의 진단은 의사가 할 일이지만, 치료는 또 다른 과정이다. 만성질환이나 암을 진단받으면 어떻게 하는가? 몸의 병은 끝까지 고쳐보려 약물과 음식요법, 운동 등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한다. 그런데 왜 마음의 병은 의사의 진단으로 모든 문제를 아이의 문제로 규정해 버리는지 마음이 아프다.
특히 영아, 유아, 아동, 청소년들의 문제들은 환경의 개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병원 진단에서 처방받은 약과, 심리치료, 가정 안에서 가족들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양육자가 잘못해서만은 아니다. 운동에서도 선수의 능력이 높아지면 또 다른 코치가 필요하다. 그 때 마다 적절한 코치진을 배치해 주지 않으면 선수는 그 상태에서 머무르게 된다. 심리치료에서 부모의 역할은 운동선수의 코치와 같다. 치료과정에서 알게 된 것을 가장 먼저 부모에게 실습해 보고 부모의 반응에 따라 힘을 받게 된다. 그리고 세상에 나가 더 큰 실험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생길 수 밖에 없는 실수, 좌절들을 다시 상담자와 다루어가면서 단단해지는 것이다.
인간발달은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이다. 문제를 가진 것이 인간이고 문제의 극복이 성장이다. 이러한 변화와 발달이 어려울 때 상담과 치료가 필요하다. 목적은 ‘자기를 알게 하는 것’이다. 상담 받는 행위 자체가 정신적 치유를 해주는 것도 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이해함으로써 불행의 반복으로부터 벗어나는 실마리를 얻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그 변화를 위해 함께 나누고 고민하는 것이 부모상담이고 아동의 치료이다. 그것이 친가정이든, 위탁가정이든, 보호소이든, 그 아이들을 보호하고 양육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유연하고 변화하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환경의 도움으로 건강한 자기가 먼저 형성되어야 팀의 일원이 되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관심과 배려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서적 배양은 아이가 ‘지금 자라고 있는 환경’만이 제공 할 수 있다. 그래서 위탁가정이 매우 중요하고 위대하다. 기질도, 성격도, 자라온 배경도 다른 아이들을 잠시나마 양육한다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가슴을 열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들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많은 위탁가정에 지지와 감사함을 전달하고 싶다. 또한 아이들의 문제가 드러날 때 자신의 책임으로만 느껴 죄책감을 안고 살지 말기를 부탁한다. 주변에 다양한 유관기관들과 나누고 협력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충분히 자부심을 느끼고 살았으면 하고 응원을 보낸다.
-2018 년 11월 울산 가정위탁 칼럼-